나의 이야기

시골집이야기

doribi 2011. 4. 15. 22:28

 

우리 시골집은 대한민국 30년에 지었습니다.

사랑방 대들보에는 대한민국 30년이라 쓰여 있고, 안방 대들보에는 무사년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대지803㎡에  건평 102㎡

앞마루와 뒷마루 그리고 사랑방 마루가 있었고 ...

지금같이 무더운 여름에는 펌프질 한 시원한 냉수로 등목하고  앞 뒷문 모두 열어놓고 마루에 누워있으면  이바우산에서  불어온 바람이 마당쪽으로 불어 선풍기가 필요없었죠.    

건축물대장에는 1926년이라고 되어있으나  대들보 상량분에 대한민국 30년이라고 쓰여 있으니 1948년(무사년)이 맞는것 가테요.

푸른 측백나무 울타리가 사시사철 감싸고 있는 기와(흙을 구운 기와) 집이었고 주변에선 우리집을 재집(기와집)이라고 불렀고..나는 동네 어른들로부터 재집 둘째아들이라고 불리기도 했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부자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칠남매가 다박다박 크다보니 해마다 빛를 얻어 쓰고 가을에 추수하여 갚곤했죠.

아마 시골사는 다른 친구들과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부용리나 읍내 사는 친구들은 무척 부자집 자제들인줄 알았는데 얼마전 동창회 모임때 들으니 그렇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나 보더군요.   

하여튼 난 가난했지만 기와집에 산다고 누군가가 말을 하여 초등학교내내 학교에서 주는 그 맛있는 빵을 받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죠.(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빵을 나눠 주지 않더군요.ㅠㅠ) 

세월이 지나다 보니 지붕의 기와가 약해지거나 내려앉아 기와 한장 교체하러 지붕에 올라갔다가 잘못하여 몇장씩 깨지더군요.   

그래서 기와를 내렸고 지금의 지붕에는 낡은 쓰레트가 덮여있답니다.

6.25 사변 당시에는 타지에서 피난온 사람들로 집안이 발디딤 틈이 없었답니다.

사람도 사람이지만 사방에 널린 인분 때문에 더욱 발디딜 틈이..ㅎ

다섯 가구나 우리집에 들어와서 여기 저기 솥단지를 걸어 놓고 피난살림을 했으니까요.

그러나 6.25 사변 끝나고  고맙다고 찾아온 분들 한분도 없었다는 할머님의 말씀이 계셨었지요.

영동읍에 사는 친지인 손영섭씨 댁에서는  우리집에 살림을 맡겨놓고 남쪽으로 피난갔다가 나중에 물건을 찾아가기도 했고요.  

6.25 사변이 한창일때 영동읍쪽에서 우리 마을쪽으로 인민군들이 곡사포 포격을 해서 마을의초가집 20여 가구가 불에 탔지만  이바우산 바로 밑에 붙어 있던 우리집은 다행히 불에 타지 않았습니다. 

그때 퍼부은 포탄의 잔해는 우리가 초등학교 1,2학년때까지도 남아있었습니다.

1,2학년때는 부용초등학교가 영동초등학교에서 셋방살이 할 때라서 이박산(소풍을 가기도 했던 이암사쪽 여러개의 바위가 있는 곳)을 넘어 매천리 저수지쪽으로 등하교를 했는데 포탄의 녹슨 파편이 산등성이에 많이 널려있었고 그중 큰 파편은 주워서 엿을 사먹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포탄 파편을 주웠지만 마을 형들은 매천리 저수지 주위에 있는 굴속에 가서(지금은 포도주를 숙성하는데 사용한다죠?) 터지지 않은 포탄을 주워 엿장수에게 팔기도 했답니다.

당시 엿장수는 폭발물 처리반 정도의 실력이 있었는지 포탄을 해체하여 알미늄과 신주를 수거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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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중반까지 그 시골집에서  열명의 대가족이 살았습니다.

할머니 ,부모님, 그리고 우리 칠남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누님들 한분씩 시집가고 ..할머니,아아버지 돌아가시고... 이리저리 분가하다보니 최근에는 수년째 방치되어 왔습니다.

제가 가끔 내려가서 둘러보지만... 비어있는 집의 쇠락을 막기에는 감당이 안되더군요.

어제  몇년간 비어있던 시골집을 1년간 월세를 주었습니다.

육군종합행정학교 건축공사장에서 목수일을 하시는 분들에게 주었는데 다섯분이 우선 사용하고 한달후에 세분이 더 온다더군요.

월세놔서 용돈 좀 벌겠다고요?

글쎄요...

제가 소방서에서 화재조사관으로써 화재원인 및 피해에 대한 조사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거의 하루에 1건 이상의 화재현장을 접하잖아요.

주택에서 전기적 요인에 의해 불이나서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에 건물 부대설비로 설치되어있는  콘센트등 전기배선 부분이 발화원(화재원인)이 되어 화재가 나면 건물주에게 귀책사유가 생기잖아요.

낡은 집 소실되는것이야 그렇지만..인명사고라도 나면....

그게 마음에 걸려서 할수없이 전기공사업자를 불러 쇠락한 시골집에 거금 50만원를 들여서 전기 배선공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월세로 얼마를 받기로 했느냐 하면 3만원입니다. 

원래는 그냥 살게 하려 했던것인데... 단 얼마만이라도 세를 받고 임대계약서를 작성하는게 나중에 깔끔해질것 같아서...조금 받았습니다.

일년 정도 있는다 했으니 36만원 수입이 생기죠.

50만원 들여서 36만원 수입이라....배보다 배꼽이 더커졌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거주하고 있으면 쇠락이 잠시나마 지연되겠지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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