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원숙미

doribi 2011. 4. 11. 08:20

 

 

 

 

 

 

 

6년전 이원 묘목시장에서  한주당 500원씩 주고 사다 심은 매화나무 묘목은 밑둥도 제법 굵어졌고 올해는 꽃눈도 많이 와서 매화향기를 발산하고 있네요.

큰 단풍나무 밑에서 씨가 떨어져 싹이 텄던 새끼 단풍나무는  분에  키운지 15년째인데 밑둥이 굵어지고 잔가지도 제법 생기면서 한해 한해 수격이 향상되어 멋을 내고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내 얼굴엔 주름만 늘고

까맣게 윤기 흐르던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렸지만 .

분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과 같이

세월이 흐르면서 한층 원숙한 멋을 내는 것이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요즘 부쩍 치매가 심해진 어머니께 제가 누구냐고 했더니...

침대에 누운채 가만히 쳐다보기만 합니다.

아들이라며 재칠이라고하자..

아이고! "우리 둘째 아들"이라고  하시면서 손으로 내목을 끌어 안더군요.

그러면서 침대의 베게 밑을 손으로 계속 더듬으며

"여기 뒀는데 돈이 어디갔나? "하시더니

덮고 있던 이불의 이불단의 계속 어루만지며 자세히 살펴보네요.

이불이 한바퀴가 빙 돌았지만 ...

우리아들 집 사게 돈 준다 면서 계속 그러시는게

아들 오면 돈을 주려고 이불속에 당신의 돈을 감춰 두었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가난한 시골 형편에 이십육년 전에 아들 장가보낼때 제대로 못 해준게 항상 걸렸나 봅니다. 

한참을 그러시더니 그밑에 서랍안에 돈이 있는지 보라고 하더군요.

치매 증상인지 잘 알지만 서랍을 한번 열어보고 여기 있다고 하니깐...

이번엔  침대밑에 내가 타고 다니던 염소가 잘 있냐고 보랍니다.

"무슨 염소? " 하고 물으니

"느 아버지가 느들 집에 갈때 타고 갔나?"  하십니다.

"아버지 몇년전에 돌아가셨잖아요" 하자

아니라며  금방 여기서  아버지와 애기했다는군요 

그리고 날보고 "누구여?" 하고 다시 묻습니다.

아들이라고 대답하며 "둘째 아들 몰라요? " 하니 ...

이번엔 ..

"그래?" 하시며  "내가 아들을 많이 낳긴 낳나 보네" 고 하십니다.

그리곤 혼자서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씀을 저리 혼자서 하실까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니

외갓집 이야기를 하시네요.

 6.25때 당시 열여섯살이던 외삼촌은 아침밥 먹고 동네(무주 설천면 소천리) 나섰다가 구천동에서 내려온 빨치산  총에 맞고 죽어서 외갓집 후사가 끊어졌지만 어머니 이야기 속에는 아직  외삼촌이 살아계시네요.

( 사실 어머닌 치매가 오기전에도 큰딸로서 후사가 끊어진 외가의 제사 및 산소 관리등에 대해 고민이 많으셨답니다 ) 

그리고 우리 어릴적 이야기 등을 하시는게 아흔이 가까운 연세에도 그 옛날일을 어제 일처럼 잘 기억 하고있네요..

(하기사 백수에 돌아가신 할머니께서도 아흔 넘은 나이에도  3.1절 무렵 어느 장날 영동읍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기억하시더군요. )

한참 있으니 이제  열여섯에 시집와서 십년간 태기가 없자 후사를 걱정한 할머니가 씨받이를 들였던 일을 말씁하시네요.

언어장애가 있던 여자인데 애를 갖지 못해 나갔답니다.

어머닌 그러십니다.

" 그 버벌네가  들어왔는데 느 아버진 날 더 챙기셨다" 고 .

하지만 그랬던 아버지도 다섯째인 내가 어머니 복중에 있을때 외도를 하셔서...

내가 태어났을때 사립문에 쳐 놓은 금줄이 없어지는일이 생겼다네요.

할머니는 그 여편네 짓이라고 노발대발 하셨는데

아버진 당신이 금줄을 치웠다고 그만좀 하라면서 그 여편네 역정을 들었다네요.

그래서 내가 어릴때 약해 빠졌고 말도 좀 더듬거린다나요.

하여간 어머닌 이모님의 십일 남매보단 모자라지만 칠남매를 두셨답니다.

치매를 앓으시는 그 정신속에서도 자식들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하시는걸 보니

많은 생각이 나게 합니다.   

 

요즘은 나도 가끔 원숙(?)해 졌음을 느낍니다.

가르마를 타면 햐얗게 올라오는 머리칼은 염색약으로 어찌 가려보고..

눈가의 주름은 로션을 듬뿍 발라 커버해 보려 하지만 

주름이 너무 많이 생긴다고 웃지좀 말고 눈좀 치켜뜨지 말라고 성화를 주리는 딸아이들 보면 잘 커버가 안되나 봅니다. 

마음은 아직 이십대이고

읽고 있는 책들도 예전 학창시절에 자주보던 무협소설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병원에 가면 간호사들은 " 아버님, 이라 호칭하고

헬스클럽에 가면 육칠십된 노인네들만 아는 체를 하면서 인사를 건네네요.

요즘은 정신도 맹해져서

자동차 트렁크에 키를 꽂아두고선 집에 들어와서 주머니마다 키를 찾느라 헤매고

대형 마트에 가서는 주차한 위치가 생각나지 않아 이리 저리  찾아다닙니다.

며칠 전엔 헬스에 가서 런링머신을 하려니까 ..

트레이너가 "아버님~" 하면서 다가 오더니

 "운동화 안가져오셨어요? "하고 묻더군요.

발을 쳐다보니 탈의실에 있는 슬리퍼를  신고  런링머신 위에 올라서 있더군요.

어제는 탈의실에서 운동복을 갈아입고 헬스장으로 나오니  

트레이너가 다가오더군요.

그러면서 하는말이 " 아버님!  티를 꺼구로 입으셨네요" 하더군요 ㅠㅠ.

"어 !  어쩐지 목이 좀 째더라니"

이글을 쓰다보니 한 일주일 전에 사무실에서 밤에 출출하면 먹으려고 바나나를 한송이 책상 밑에 둔게 생각나네요.

꺼내보니 껍질은 까맣게 변했지만 다행히 속은 먹기좋게 잘 숙성되었네요.ㅎ

 

나이가 들더라도 분재와 같이 한해 한해 수격과 자태가 깊어지고

바나나 같이 먹기 좋을 만큼만 원숙해 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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